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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 1598-5725(Print)
ISSN : 2093-8470(Online)
Journal of Navigation and Port Research Vol.43 No.4 pp.243-249
DOI : https://doi.org/10.5394/KINPR.2019.43.4.243

Study on the Goryeo Sea Route by Seogeung and Aids to Navigation Facility of Goryeo Fire Signal

Beom-Sik Moon*
*Director, Dong Kang M-Tech, Busan 46984, Korea
26/06/2019 16/07/2019 24/07/2019

Abstract


Seonhwa Bongsa Goryeodogyeong written by Seogeung of Song nationality is the most vivid record of sailing in the West Sea of Goryeo. Seogeung who visited Goryeo on a ship sailed from Heuksando to Byeokrando using a fire signal of the islands area. Fire signal was installed in the Goryeo area, was located nearby the sea route at that time, and was marked by smoke during the day and torched at night so that the navigators could identify it 24 hours. In addition, it was installed at the top of the mountain so that the navigators could easily identify it from a distance. Goryeo fire signal is satisfied by qualification of modern aids to navigation and Visual range is checked about 29-39 miles, Luminous intensity of fire signal estimates to approximately 9,105-168,610cd. Therefore, the fire signal of Goryeo was very easy to use and was highly reliable as operated by the nation and its role in aiding navigations facility as an essential for safe navigation.



서긍의 고려항로와 고려 봉수의 항로표지 기능에 관한 연구

문 범식*
*동강엠텍 소장051)403-8575

초록


중국 송나라 서긍이 작성한 선화봉사 고려도경은 고려의 서해상을 항해한 가장 생생한 기록이다. 선박을 이용하여 고려를 방문한 서긍은 도서지역의 봉수를 이용하여 흑산도에서 벽란도까지 항해하였다. 고려가 도서지역에 설치한 봉수는 당시의 통항로에 인접한 곳에 위 치하였고, 항해자가 24시간 식별할 수 있도록 낮에는 연기, 밤에는 횃불로 위치를 표시하였다. 또한 산 정상에 설치하여 항해자가 원거리에서 쉽게 식별할 수 있도록 하였다. 고려 봉수는 현대 항로표지 기본요건을 만족하며, 광달거리(시인성)는 약 29-39mile로 추정되고, 봉수의 광도 는 약 9,105-168,610cd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러므로 고려의 봉수는 현대의 항로표지와 같이 항해자에게 쉽게 이용되고, 국가가 운영한 만큼 신뢰성이 높아 안전항해에 필수적인 항로표지 기능을 수행하였다.



    1. 서 론

    우리민족은 삼국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인 해 상활동을 하고 있다. 백제는 일본과 신라는 당과 교역을 하였 고, 고려시대에는 조운제도가 확립되어 지방의 세금을 뱃길을 이용하여 개성까지 운송하였다.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선박을 이용한 해상 무역활동이 전 세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선박이 해상을 운항함에 있어 현대는 과학기술과 항해기기 의 발달로 원양항해를 자유롭게 할 수 있고, 안전운항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장소에 항해보조시설인 항로표지를 설 치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삼국시대에서 고려시대까지 항로표 지를 설치하여 운영하였다는 기록을 찾아보기 어렵다. 일본의 경우도 최초의 등대로 알려진 구화(冓火)가 등장한 것은 1600 년경이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알려진 기록은 없는 상황이다. 대신 근대시대에 들어서 일본의 압력으로 1903년 6월에 점등 한 팔미도등대가 우리나라 근대 등대의 효시로 알려져 왔을 뿐이다(Kim, 1996).

    그렇다면 과거 우리 선조들은 어떤 방법으로 선박을 목적 지까지 항해하였으며, 항해자들은 무엇을 참조하여 주야간 안 전항해를 하였을까하는 의문이 발생하였다. 과거에는 오늘날 과 같이 항로표지나 정확한 항해지도가 부족했을 것임으로 육 안으로 식별할 수 있는 항해참조물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 므로 우리 선조들은 육안으로 선박에서 육지를 바라볼 수 있 고, 육지에서 선박을 확인할 수 있는 연안항해를 주로 했을 것 으로 추정된다. 연안항로를 택하여 운항할 경우, 선박은 갑작 스러운 기상 조건의 악화때에도 신속하게 육지나 섬으로 피항 이 용이했을 것이고, 항상 선위의 확인이 가능했을 것이다 (Ko, 2015). 따라서 우리 선조들은 육지에 선박의 안전항해를 보장하는 현대의 항로표지와 유사한 장치를 설치했을 가능성 이 높은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따라서 본 연구의 동기는 조 운제도가 활성화되고, 강력한 해상세력을 기반으로 건국된 고 려는 무엇을 항로표지로 이용하였는지에 대한 의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확인된 고려에서 조선까지 항로표지와 관 련한 연구는 김성호에 의한 고려시대 조운항로와 등대의 기원 이 있지만 이 또한 불, 연기, 소리 등을 지명과 연계하여 항해 표식, 등대시설, 발성시설 등으로 분류만 하였다. 또한 항로표 지와 관련한 많은 문헌에서도 선박이 안전하게 항해하기 위한 방법으로 봉수를 이용하여 선박을 안내했을 것이라는 추측만 할뿐이다(Kim, 1996).

    그리고 고려의 대표적인 역사서로는 고려사와 고려사절요 가 있지만 두 역사서에는 해상활동과 관련한 사항으로 조운과 수군의 활동 등에 관한 기록만 존재하고, 선박의 안전운항을 위해 항로표지를 운영하거나 이용했다는 기록은 존재하지 않 았다(Lim et al., 2004). 하지만 송의 사신단이 고려를 방문하 여 기록으로 남긴 선화봉사고려도경에서는 고려의 문화, 경제 등과 사신선의 이동경로(고려항로) 그리고 봉수가 길을 안내 했다는 기록이 생생하게 담겨져 있어 고려의 항로표지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따라서 본 연구의 목적은 선박을 이용하여 고려를 방문한 송의 사신단 서긍일행의 항로 고찰과 항로주변에 위치한 봉수 의 역할을 통해 고려 봉수의 항로표지 기능을 연구하고자 한 다. 또한 본 연구의 범위는 자료의 제한으로 흑산도에서 태안 반도 이남으로 한정하여 실시하였으며, 봉수와 관련한 내용은 봉수의 선행 연구자료를 기반으로 연구하였다. 항로표지와 관 련한 용어는 고려시대에 정립되지 않았으므로 현대의 용어를 사용하였음을 사전에 밝혀둔다.

    2. 서긍의 고려항로와 항로표지

    2.1. 서긍의 고려항로

    1123년 고려를 방문하기 위한 송의 사신단(이하, 서긍일행) 은 당시 금나라가 고려와 송의 중간에 위치하여 육로가 막혔 기 때문에 바닷길을 이용해야만 했다. 바닷길은 고려와 송이 주로 이용하는 지금의 절강성 연안의 항구에서 서해를 건너 전라남도 근해에서 다시 예성강까지 북상하는 노선을 택하였 다. 이를 위해 서긍일행은 정사, 부사 그리고 선원까지 1,000 여명의 인원과 신주로 이름 지어진 관선 2척, 객주로 불린 민 간소유 선박 6척 등 8척을 이용하여 고려까지 항해하였다(Jo, et al., 2013). 사신단 중 서긍은 고려의 역사, 종교, 문화 등을 글과 그림으로 남겼는데 이것이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 高麗圖經)다. 또한 고려도경에는 1123년 당시 송에서 고려로 이어지는 항로에 대한 가장 자세한 기록이 남아있다.

    Fig. 1과 같이 서긍일행이 선박을 이용하여 중국 변경을 출 발한 것은 1123년 3월14일이다. 이들은 중국내륙의 운하를 따 라 이동한 후, 2개월이 지난 5월16일 중국 명주에서 다시 출발 하여, 6월2일 가거도로 추정되는 협계산을 통과한 후, 흑산-월 서-난산도-백의도-궤섬-춘초섬-빈랑초-보살섬-죽도-고섬섬 -군산도-횡서 등의 전라도 지역의 서해를 따라 항해와 정박 을 반복하며 6월12일 벽란도에 도착하였다. 협계산에서 벽란 도까지는 약 230마일(직선거리)로 10일간 이동하였다.

    고려도경 상에 남아있는 항정 기록은 매우 자세하고 세밀 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해안선과 뱃길이 달라졌고 당시 지명 이 남아있지 않아 서긍이 남긴 지명이나 기록만으로 현재의 지명을 추정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많 은 연구자들이 오랜 기간 동안 관련 연구를 진행해 왔다. 그 러나 협계산에서 태안반도 이남까지 전라도의 주요 섬 중에서 군산도(선유도), 고섬섬(위도), 흑산(흑산도), 협계산(가거도) 등을 제외하면 그 위치에 대해서는 연구자들마다 그 의견을 달리하고 있다. Fig 2는 흑산도에서 어청도까지 연구자들의 항로에 대한 견해를 표현한 것이다.

    ① 번 항로는 조명일의 연구에서 서긍 일행이 가거도를 통 과한 후 육지를 가시거리에 가깝게 두고 항해하기 위해 흑산 도 남쪽을 통과하였다. 이후 비금도, 자은도, 임자도를 우측 인근에 두고 항해한 후 하왕등도와 위도, 어청도와 연도 사이 를 통과하여 항해한 것으로 추정하였다(Jo, 2015).

    ② 번 항로는 문경호의 연구에서 흑산도를 북쪽을 통과하여 임자도를 항해목표물로 하여 항해하였고, 안마도를 좌측에 두 고 하왕등도와 위도 중앙 및 고군산도를 통항한 후, 연안에 근 접하여 선위를 확인하면서 항해한 것으로 추정하였다(Mun, 2008)

    ③ 번 항로는 정진술의 연구에서 홍도와 흑산도 사이를 통 과한 후 안마도를 항해목표물로 하여 항해하였고, 안마도와 위도를 좌측에 두고 고군산도를 통항한 후, 연안에 근접하여 선위를 확인하면서 항해한 것으로 추정하였다(Jung, 2008).

    연구자들은 고려항로의 추정에 있어 견해는 다소 상이한데, 이는 연구자들마다 고려도경에 기록된 섬의 지명을 역사서나 섬의 형태를 통해 해석하는 정도가 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긍일행의 고려항로는 연안에서 15~20mile 이내에서 항해를 하면서 전라도 서해안에 위치한 주요 섬은 10곳(흑산도-비금 도-자은도-임자도-안마도-위도-하왕등도-군산도-연도-어청 도)을 통과한 것으로 확인된다. 따라서 이러한 결과는 당시 서 긍일행의 선박이 우리나라 서해 연안에 위치한 자연적인 구조 물 또는 인공적인 구조물을 활용하여 선위를 확인하면서 항해 한 것으로 추정된다.

    2.2. 서긍의 항로표지 이용

    IALA(International Association of Marine Aids to Navigation and Lighthouse Authorities)의 항로표지 분류에 의하면 시각표지(Visual Aids to navigation)는 폭넓은 개념으 로 자연물 혹은 인공물이 될 수 있다. 곶, 산봉우리, 바위, 나 무 등의 자연물과 교회탑, 연돌 등과 같은 현저한 구조물뿐만 아니라 단거리 항로표지로 특별히 설계된 구조물 즉, 형상표 지, 광파표지가 포함된다고 정의한다(IALA, 2014). 고려시대 에는 현대와 같이 건축이나 공학이 발달하지 않아 선박의 통 항안전을 위해 등표, 등부표, 입표와 같이 해상에 인위적인 구 조물을 이용한 항로표지를 설치하고 운영하는 것은 제한적이 었을 것이다. 서긍일행이 고려항로를 항해하면서, 고려도경 상 항로표지의 이용에 대한 기록은 주간에 그 형상과 색채 등으 로 위치를 표시하는 형상표지와 야간에 등화를 이용하여 그 위치를 표시하는 광파표지로 구분할 수 있으며, 이는 IALA의 시각표지로 해석할 수 있다.

    고려도경에는 서해안의 도서, 암초 등을 포함하여 37곳의 지명을 기록하였다. 연구의 범위인 가거도에서 어청도까지 고 려도경에는 18곳의 지명을 명시하였고, 춘초섬, 보살섬 등 2곳 을 제외한 16곳은 항해 참조물표로 이용했을 가능성이 있는 자연적인 형상을 기록하고 있다. 즉, 서긍일행은 자연적인 형 상인 형상표지를 이용하여 선위를 확인하였을 것이고, 선박이 가야할 방향을 수정하면서 최종 목적지로 항해한 것으로 추정 된다. 가거도에서 어청도까지 서긍이 기록한 각 지명의 형상 은 다음과 같다.

    협계산은 병풍같은 산, 오서는 다섯산이 서로 근접해 있으 며, 배도는 화살받이 모양이다. 백산은 성에 담장이 둘러쳐진 형상이고 흑서는 작은 봉우리의 가운데가 동굴같이 비어있다. 월서 중 소월서는 문 같이 마주보고 있어 작은 배가 통항할 수 있으며, 난산도의 작은 두 암초는 거북과 자라모양이다. 백 의도는 세 개의 산이 연이어 있고, 궤섬은 산을 둘러싼 부서진 암초들이 이루 헤아릴 수 없다. 빈랑초는 빈랑과 비슷한 모양 이고, 죽도는 흰돌로 된 암초 수백 덩어리가 있다. 고섬섬은 고슴도치 털의 모양이고, 군산도는 12봉우리가 서로 이어져 성처럼 원형으로 둘러쳐져 있다(Seo, 1123).

    한편 서긍일행은 고려의 서해안을 주간에는 자연적인 형상 인 형상표지를 이용하여 항해 목표물이나 선위를 확인하면서 항해를 했으며, 야간에는 주로 정박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일정이 그렇지는 못했다. 6월2일 가가도를 통과 한 이후, 6월4일 죽도에 정박할 때까지 3일간의 항해는 주야 간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추정할 수 있는 내용으로, “밤이 깊어 밀물이 빠져서 배가 물을 따라 물러나 다시 먼바다로 거 의 빠져나갈 지경이 되자 모든 배가 두려워서 급히 노를 저어 애썼으며, 동틀 무렵까지도 여전히 춘초섬에 있었다.”라고 기 록하고 있다(Seo, 1123).

    일반적으로 형상표지가 주간에 보이는 것은 조명과 배경에 의해서 좌우된다. 서긍일행이 주간에 이용한 형상표지는 야간 에 자체적으로 빛을 발하지 않기 때문에 시인성이 낮으며, 달 빛 등을 이용하여 원거리에서 쉽게 식별할 수 없었으므로 식 별성도 낮았을 것이다. 또한 당시의 상황을 고려시 야간에 선 위를 확인한 다는 것은 항해자에게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 지만 서긍일행은 야간에 고려항로를 안내받으면서 항해할 수 있었는데, 이는 봉수가 광파표지 역할을 한 것이다. 고려도경 에는 서긍일행이 흑산도에 지나갈 때, “중국 사신의 배가 이 를 때마다 밤에는 산 정상에서 봉화를 밝히고 여러 산들이 차 례로 서로 호응하여 왕성까지 이르는데, 이것이 이 산에서 시 작된다(Seo, 1123).”라고 기록하고 있다. 서긍일행은 흑산도에 서 예성항 인근까지 설치된 봉수의 안내로 안전하게 항해를 할 수 있었다. 특히 야간에 봉화불은 현대적 의미의 광파표지 에 해당하는 것으로 당시에는 전기를 이용한 빛 대신 횃불이 광원의 역할을 대신하였다.

    서긍이 고려도경에 기록한 항로표지는 형상표지와 광파표 지이다. 형상표지는 현대와 같이 인공적인 구조물이 아닌 자 연적인 구조물로 항해자가 보는 방향, 조석 차, 기상상황, 태 양의 광도, 달빛의 밝기 등에 따라 상이할 수 있다. 하지만 광 파표지인 봉수는 인위적인 구조물로 형상표지보다는 항해자 가 선위를 확인하고 항로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봉수의 봉(熢)은 야간에 횃불을 통해서 의사 를 전달하는 형태이고, 수(燧)는 낮에 연기를 올려 통신을 하 는 것으로 봉수는 주야간 연락 수단을 총칭하는 국가안보 네 트워크라고 할 수 있다. 상기한 바와 같이 서긍이 저술한 고 려도경에 의하면 송의 사신이 흑산도에 들어서면 매양 야간에 는 항로 주변의 산정상 봉수에서 횃불을 밝혀 순차적으로 왕 성까지 인도하였다는 사실이 전해지고 있어 봉수제가 비교적 잘 운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봉수제의 제도적 규 정이 확립된 것은 고려 의종3년(1149년) 서북병마사 조진약의 상소에 의하여 평시에는 횃불과 연기를 1거, 2급시에는 2거, 3 급시에는 3거, 4급시에는 4거를 올리고 각 봉수소에는 방정 2 명과 백정 20명을 배정하고 평전 1결씩을 지급한다라고 함으 로 서긍일행이 고려를 방문한 이후 제도적으로 확립된 것으로 보인다(Jo and Kim, 2003).

    2.3 고려항로 상 봉수의 의미

    서긍일행이 항해한 흑산도에서 어청도까지 고려항로 주변 에는 10개의 주요한 섬들이 분포되어 있으며, 주요 섬에는 Fig. 1과 같이 봉수들이 위치하고 있다. 주요 섬에 위치한 봉 수들이 고려시대에 운영되었다고 추정하는 것은 봉수터를 학 계에서 확인한 결과 고려시대의 유물이 출토되어 되었기 때문 이다(Jo, 2015).

    고려항로 주변의 주요 섬 10개 지역에 위치한 봉수의 의미 는 다음과 같다. 흑산도봉수는 상라산 정상부에 위치하며, 변 방에 자리한 지리적 특정으로 여송항로를 항해하는 선박이 주 로 사용하는 항로의 길잡이 역할을 하였다. 비금도봉수는 성 치산 정상부에 위치하여 흑산도를 통과한 선박이 연안으로 접 근하기 위한 안내 역할을 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자은도봉수 는 두모산, 임자도봉수는 대둔산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다. 안 마도봉수는 성산봉에서 서남쪽으로 이어진 146m 고지에 봉수 지가 남아있다. 위도봉수는 도제봉 정상부에 자리하고 있으며, 북쪽에는 식도가 인접해 있고 서쪽으로 왕등도가 있다. 하왕 등도봉수와 위도봉수는 동서로 일직선상에 배치되어 서해안 을 따라 항해하는 선박의 항해지표 및 감시 목적을 담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장도봉수(고군산도)는 대장도의 중심 봉 우리인 장자봉에서 동쪽으로 이어진 산줄기 끝부분에 자리하 고 있다. 연도봉수는 고군산도를 통과한 선박이 태안반도를 접근하기 전 확인하는 물표일 것이다. 특히 연도의 煙자는 연 기를 뜻하는 것으로 지명을 통해 이곳에 봉수가 있다는 사실 을 짐작하게 한다. 어청도봉수는 어청도의 주산인 당산의 정 상부에 자리하고 있어 외해에서 연안으로 접근시 좋은 초인표 지로 활용되었을 것이다.

    연안 및 도서에 위치한 봉수들은 선박이 닿았던 주요 포구 와 매우 인접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 이는 변방의 소식을 중 앙에 신속하게 전하는 봉수의 주된 임무와 동시에 포구를 통 해 드나드는 각종 선박의 감시기능이 강했음을 의미하는 것이 다. 또한 봉수는 현재의 항로표지(유인등대)와 같이 해안선이 복잡한 서해를 따라 항해하는 조운선, 무역선 등의 안전한 항 해를 돕는 길잡이 역할도 병행했을 것으로 사료된다. 특히 서 해 해상의 도서지역에 자리하고 있는 봉수는 이러한 기능이 더욱 중요시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3. 고려 봉수의 항로표지 기능 분석

    3.1 봉수의 항로표지 기본요건 분석

    현대의 항로표지는 해상교통의 안전을 도모하고 선박의 운 항능률 증진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해상교통의 환경을 고려하 여 적절하고 유효한 항로표지의 요건을 Table 1과 같이 구비 하도록 권고하고 있다(Gug & Jeong, 2013). 따라서 고려시대 운영된 봉수를 현대의 항로표지로 가정한다면, Table 1에 언 급된 항로표지 기본요건을 만족해야 한다.

    첫째, 국제적으로 간편하고 식별이 쉬울 것이다. 고려는 대 외무역과 사신단의 방문이 있었지만, 봉수가 국제적으로 표준 화되어 있지는 않았고 고려시대에는 국제적으로 항로표지가 표준화 되지 않은 상태로 부적합하지만, 항상 운영되는 봉수 는 원거리에서도 누구나 식별할 수 있는 항해 참조물로 적합 하다.

    둘째, 일정한 장소에 고정되어 있으며 정확히 운영될 것이 다. 고려시대 운영된 봉수는 도서의 산정상이나 능선에 연변 을 축조한 인공적인 고정 건축물이며, 상기에 언급된 바와 같 이 주간에는 연기로 야간에는 횃불 1거를 항시 운영하고 있으 므로 적합하다.

    셋째, 신뢰성이 높고 이용이 쉬울 것이다. 고려의 봉수는 일 정한 인원이 상주하여 운영되고, 적의 침입에 대비한 국가 네 트워크 통신망임으로 항상 신뢰할 수 있고, 항해자는 봉수를 이용하여 언제든지 선위를 확인할 수 있으므로 적합하다.

    넷째, 이용자에게 친근감을 줄 것이다. 봉수는 주변을 항해 하는 항해자의 요청에 의해 운영되는 것이 아니고, 국가 안전 통신만으로 24시간 운용되고 있다. 따라서 항해자가 이용하고 자 하면 언제든지 이용 가능한 열려있는 항해 참조물로 적합 하다. Fig. 3

    다섯째, 항해자가 무시할 수 있으나 대응성이 좋을 것이다. 고려항로에 익숙한 항해자는 주변 지형을 이용하여 선위 확인 이 가능하므로, 항로를 쉽게 확인 할 수 있다. 항로 주변에 설 치된 고정식 봉수는 식별은 용이하지만, 항로에 익숙한 항해자 는 항해 중 인식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봉수는 국가가 운 영하는 항해 보조시설이므로 항상 항해자가 이용할 수 있도록 지속적이고 신뢰성이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게 됨으로 항해자 가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 언제든지 대응 가능함으로 적합하다.

    위와 같이 고려시대 운영된 봉수는 당시의 국제적 교류가 활발한 시기가 아니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표준화 되지만 않았 을 뿐, 현대 항로표지 요건을 충족하고 있다. 또한 고려시대 운영된 봉수는 현대의 항로표지 광원과 형상 등이 다소 상이 하기는 하지만, 항로 주변을 통항하는 선박에게 무한적인 신 뢰와 지속적인 서비스를 제공하여 안전항해를 보좌하는 역할 을 했다는 것은 현대 항로표지와 대동소이하므로, 고려가 운 영한 봉수는 항로표지의 기본 요건을 충족한다.

    3.2 봉수의 광달거리 분석

    항로표지를 목적상으로 분류할 경우 육지초인표지, 연안표 지 등으로 분류한다. 연안표지는 해안에서 20마일 이하의 해 양을 항해하는 선박의 선위를 확정하는데 필요한 표지이다. 당시 고려의 선박이 바다를 항해할 때, 항해자들은 가능하면 육지나 섬을 눈으로 바라보면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이 조난의 위험을 감소시키고, 항로를 설정하기에 가장 좋은 방 법으로 추정됨으로 연안항해에 의존했을 것이다.

    가거도~어청도까지 서긍의 고려항로는 우리나라 서해안을 남북으로 이동한 항로이고 연안에서 약 15~20mlie 정도 위치 하여 항해한 것으로 연구자들은 추정하였다. 서긍일행이 연안 항해를 한 것은 가거도에서 개경으로 가기 위한 단거리 항로 이기는 하지만, 고려도경에 기록한 바와 같이 주요 섬 10곳에 는 위치한 봉수의 횃불이 항로를 안내했기 때문이다. 즉 봉수 가 가진 광달거리(시인성) 범위 내에서 서긍일행의 항로가 결 정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광달거리는 항로표지의 등화가 도달하는 최대거리로 지리 학적 광달거리와 광학적 광달거리로 구분한다. 지리학적 광달 거리는 지구곡률, 대기에 의한 빛의 굴절, 등고 및 관측자의 눈높이에 의해 결정되고, 식(1)과 같이 산출한다(Jung & Gug, 2013).

    D ( m i l e ) = 2.083 ( H + h )
    (1)

    여기서,

    • H : 봉수의 해면상 높이(m)

    • h : 송나라 사신선의 관측자 안고(m)

    봉수의 지리학적 광달거리 확인을 위해 해면상 높이(H)는 봉수가 설치된 위치의 해발고도를 기준으로 하며, 관측자의 안고(h)는 고려도경의 기록을 기준으로 한다. 서긍은 고려도 경에 고려를 방문하면서 이용한 선박 객주의 제원을 길이는 10여길, 높이는 3길(약5.5m), 너비는 2길5자로 2천여 곡의 곡 식을 실을 수 있다고 기록하였다(Seo, 1123). 여기서, 선박의 높이는 선박의 상층 구조까지의 높이로 추정되며, 흘수선 (1.5m)을 고려할 경우 항해자가 위치한 갑판의 높이는 약 4.0m이고, 여기에 항해자의 눈높이(1.5m)를 고려하면 관측자 의 안고는 5.5m로 추정된다.

    그 결과, 고려항로의 주요 섬 10개소에 위치한 봉수의 지라 학적 광달거리(h=5.5m)는 29.6~39.7mile(Table 2 참조)로 Fig. 4와 같이 표현될 수 있다. 이 경우 각 연구자들에 의해 추측한 서긍의 고려항로는 모두 봉수의 지리학적 광달거리 내에 위치 하고 있다. 특히 서긍일행이 항로를 결정할 때 최우선 적으로 고려한 것이 봉수의 광달거리라고 가정하면, 서긍일행은 ◯가항 로를 따라 항해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봉수를 이용한 선위확 인과 안전항해하기 위해 서긍일행은 흑산도 하단 통과 후 연 안으로 접근하여 비금도, 자은도, 임자도 봉수를 육안으로 식 별하였고, 이후 항해목표물인 안마도 봉수 방향으로 항해를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하왕등도와 위도 봉수의 중앙을 통과한 후 고군산도에 정박했으며, 이후 개성을 향해 연도 봉 수를 육안으로 식별하면서 항해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등화는 일정거리 이상 떨어진 곳에서는 보이지 않게 되는데 이것은 등화의 광도, 대기투과율 및 관측자의 눈에서 있어서의 가시조도에 기인하는데 이를 광학적 광달거리라고 한다. 특히, 대기투과율은 극히 청정한 상태부터 안개까지 날 씨조건에 따라 대단히 크게 변화하며 광학적 광달거리도 현저 히 변화한다. 따라서 IALA에서는 표준시정 10해리를 세계 각 국이 취급하도록 권고하고 있으며, 대기 투과율은 0.74를 권고 하고 있다(IALA, 2018).

    연구자들이 추정한 흑산도~어청도까지 고려항로에서 서긍 일행이 봉수를 식별했을 최대거리는 흑산도를 통과하여 비금 도 인근으로 항해시 약 21mile(◯A지점), 안마도를 통과하여 위 도인근으로 항해시 약 14mile(◯B지점), 고군산도를 통과하여 어청도인근으로 항해시 약 17mile(◯C지점)이다. 따라서 서긍 일행의 항적을 통한 봉수의 광학적 가시거리는 약 14~21mile 이므로 IALA의 기준(대기 투과율=0.74)으로 적용 시 봉수 횃 불의 광도는 약 9,105~168,610cd이다. 하지만 당시의 봉수가 군사적 통신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으므로 봉수의 광학적 광 달거리는 10개의 섬에 위치한 봉수간 거리(9.0~34.7mile)를 고 려할 경우 횃불의 광도는 그 이상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3.3 봉수와 등대

    언급된 바와 같이 봉수가 적의 침입을 알리는 중요한 군사 통신 수단으로 시작되었다면, 등대의 시작은 배의 안전을 지 키기 위해 시작되었다. 하지만 도서지역 및 인근에 설치된 봉 수와 등대는 항해자의 입장에서 선박안전에 필수적인 항해참 조물이고 항로의 안내자 역할을 수행하였다.

    Table 2는 고려항로 주변의 봉수가 운영된 10곳의 섬에, 현 재 해양수산부가 설치ㆍ운영 중인 유·무인등대 중 연안표지로 서의 기능이 되는 등대 현황이다. 봉수와 등대의 세부적인 위 치는 상이하지만 봉수가 운영된 섬에는 오늘날 등대가 운영되 고 있다. 즉 선박의 안전한 통항을 위해서 항로의 중요지점에 항해 참조물 및 선위 확인을 위해 봉수 및 등대를 설치·운영 한 것은 유사하다.

    또한 봉수와 등대의 등고를 비교하면 봉수의 등고가 대체적 으로 높다. 고려시대 봉수를 이용한 항해자는 항해자의 시각 으로만 봉수를 인지해야하기 때문에 봉수대의 높이는 매우 중 요했을 것이다. 봉수의 중요한 기능이 봉수대 고유의 신호전 달과 적의 침입을 대비하여 해안 감시가 주목적이므로 해상의 수많은 섬들로 인한 시야방해를 피하기 위해 높은 산봉우리를 봉수대의 터로 선정했을 것으로 추정된다(Jo & Kim, 2003). 또한 봉수 건조에 필요한 자재의 운반과 인력동원의 문제 등 당시 여건을 고려할 경우 1회의 건축으로 동서남북의 모든 항 행 방향에서 쉽게 봉수가 식별 가능하도록 대다수 각 섬의 정 상에 위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현대의 등대는 바다에서 잘 식별할 수 있는 해안가 또 는 능선 주변에 설치되어 있다. 현대는 항해자가 눈으로 등대 를 인지하기도 하지만 쌍안경, 전자해도 등 현대화된 장비를 활용하여 원거리에서 식별 가능하다. 또한 현대의 등대는 고 려시대처럼 국가 통신망으로 활용되는 것이 아니고 순수하게 선박의 항로를 안내하고, 선위를 확인하는 등 선박 통항안전 을 유도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항해자가 쉽게 식별할 수 있는 높이로 항해자의 눈높이와 유사한 위치에 있 는 것이 등대의 목적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봉수와 등대는 상호 바라보는 시 점이 상이하다. 즉, 봉수는 해안감시 등을 목적으로 육지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시점이고 등대는 통항선박 안전을 유도하기 위해 해상에서 육지를 바라보는 시점으로 항해자 중심의 항로 표지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봉수와 등대의 시점상의 차이 로 인하여 일부에서는 봉수가 특수표지인 VTS(Vessel Traffic Service)의 효시이고, 봉수원이 VTS 관제사의 효시라 고 하는 경우도 있다(MOLTAMA, 2012).

    이처럼 봉수가 위치한 곳에 현대는 등대를 운영하고 있으 며, 봉수와 등대는 이용자에게 지속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신뢰성을 높이는 등 공공의 이익을 목적으로 국가에서 운영하 는 시설물이다. 또한 봉수는 항로를 따라 고정적으로 설치된 등부표와 같은 현대적 항로표지와는 구별되지만, 선박 통항로 상에 인위적으로 설치·운영되어 운항자에게 항해 안전상 중요 한 참조물이 되었을 것이므로 항로표지라 할 수 있다.

    4. 결 론

    조운제도를 운영한 고려는 해상을 통하여 세곡을 개경으로 운반하였으며, 조운선의 통항 안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 을 것이다. 하지만 고려의 역사서에는 아쉽게 항로표지에 대 한 기록이 전무하였다. 다행히 서긍일행이 선박을 이용하여 고려항로를 항해 중 봉수를 활용했다는 기록을 통하여 봉수가 항로표지로서의 역할을 했다고 추정할 수 있었다. 고려가 도 서지역에 설치 운영한 봉수가 항로표지라는 논의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고려가 설치·운영한 봉수를 서긍일행이 항해참조물로 활용했다는 사실을 고려도경에 기록하고 있어 봉수는 고려가 운영한 항로표지라 할 수 있다.

    둘째, 고려시대 설치된 봉수는 국제적인 표준화를 제외하면 현대 항로표지의 기본요건을 충족하고 있어 봉수를 항로표지 로 간주할 수 있다.

    셋째, 고려항로 주변의 도서에 설치된 봉수는 산 정상에 설 치 운영하여 항해자가 원거리에서도 쉽게 식별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연안표지의 역할을 하였다.

    넷째, 봉수의 지리학적 광달거리는 서긍일행의 고려항로를 충분히 안내하고 있고, 광학적 광달거리 또한 고려항로를 포 함함으로 봉수는 항로표지로써 손색이 없다.

    다섯째, 봉수와 등대의 근본적인 설치 목적은 상이하지만, 항해자의 입장에서는 선위 확인 및 항해 참조물로의 활용 등 선박 통항안전에 필수적인 요소로 역할을 수행하고 있어 항로 표지라 할 수 있다.

    여섯째, 현재보다 과학기술이 발전하지 못한 고려시대에 운 영된 봉수는 항해자에게 신뢰할 수 있는 지속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운영인력을 유지하였다. 이는 현대에 운영되는 항로표지의 일종인 유인등대라 할 수 있다.

    고려시대 운영된 봉수는 국가의 안보와 신속한 정보전달을 목적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항해자의 시각보다는 바다를 감 시하는 목적이 강했을 것이다. 도서지역에 설치된 봉수는 지 속적으로 연기와 횃불을 운영함으로써 고려의 선박 운항자는 항상 봉수를 참조하여 선위를 확인하여 침로를 결정했을 것으 로 추정됨으로 고려의 봉수는 항로표지라 할 수 있다.

    이 연구를 통해 한가지 아쉬운 점은 우리나라 항로표지의 역사는 근대 항로표지의 효시인 팔미도등대를 기점으로 시작 된다는 것이다. 비록 과거의 기록이 부족하여 항로표지에 대 한 역사는 찾기 어렵지만 삼국시대, 고려, 조선, 근대,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민족은 지속적으로 바다를 항해하였고, 해상 에서 안전항해를 위한 방법을 강구했기 때문에 우리민족의 항 로표지 설치·운영에 대한 각 시대별 연구의 확대가 필요하다.

    Figure

    KINPR-43-4-243_F1.gif

    Goryeo sea route by Seogeung

    KINPR-43-4-243_F2.gif

    Signal fire station & estimated sea route of Seogeung

    KINPR-43-4-243_F3.gif

    Heuksando fire signal site

    (source : Dadohaehaesang national park west office, 2013)

    KINPR-43-4-243_F4.gif

    Geographic range(h=5.5m) of fire signals & estimated sea route by aids to navigation

    Table

    Qualification of Aids to navigation and fire signal

    Geographic range(h=5.5m) of fire signals & lighthouse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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