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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 1598-5725(Print)
ISSN : 2093-8470(Online)
Journal of Navigation and Port Research Vol.42 No.6 pp.469-477
DOI : https://doi.org/10.5394/KINPR.2018.42.6.469

A Critical Review of the Geographical Location of Anpyeon-do(Baleum-do) Written in the Nanjung Diary by Admiral Yi

Kwang-Soob Ko,Tae-Yong Pak*,Deug-Bong Kim**
*,†Division of Naval Officer, Mokpo National Maritime University, Mokpo City, 58628, Korea
**Division of Navigation Information System, Mokpo National Maritime University, Mokpo City, 58628, Korea
Corresponding author : 종신회원, nama1@mmu.ac.kr 061)240-7154
19/09/2018 15/11/2018 16/11/2018

Abstract


Most of the current administrative names and locations for the names of places in the Nanjung diary have since been confirmed. However, a disagreement ensued among translators or researchers over Anpyeon-do (Baleum-do) islet recorded in Admiral Yi Sun-Shin’s diary. Anpyeon-do was first recorded in the diary on October 11, 1597. It is credited to be the location where Yi Sun-shin and Chosun Naval Fleet stayed when sailing along the Southwestern coast of the Korean Peninsula after the battle of Myeongnyang. However, Anpyeon-do’s exact geographical location has never been accurately confirmed. To accurately locate the islet, this study compared the direction and position of geographical locations observed in the Anpeon-do site match to actual geographical positions and directions. In addition, the direction and position of the geographical locations observed in the newly explored islands and mountains were evaluated with regard to how they correspond to the actual Anpeon-do. As a result, we concluded that the real location of Anpyeon-do recorded in the Nanjung diary is the Maebong mountain in Anjwa-do.



난중일기에 기록된 안편도(발음도)의 지리적 위치에 관한 실증 연구

고광섭,박태용*,김득봉**
*,†목포해양대학교 해군사관학부 교수, **목포해양대학교 항해정보시스템학부 교수

초록


난중일기에 나타난 지명에 대해 현재의 행정지명과 위치는 대부분 확인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량해전 이후 한반도 서남해안 을 항해하면서 이순신과 조선수군이 체류했던 장소 중 1597년 10월 11일 일기에 기록된 안편도의 현재의 지명과 위치가 어디인지 번역자 또 는 학자들 간에 의견이 다를 뿐 아니라, 아직까지도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 연구는 안편도로 추정되어 온 기존의 장소에서 관찰한 지형지물의 방향과 위치가 실제 위치와 방향을 비교하여 얼마나 일치하는지를 분석하였고, 연구자들이 새롭게 탐사한 섬과 산에서 관찰한 지 형지물의 방향과 위치가 실제 안편도와 얼마나 일치하는지를 분석하고 평가하였다. 그 결과 난중일기에 기록된 안편도는 현재의 안좌도에 있 는 매봉산임을 확인하였다.



    1. 서 론

    난중일기는 노산 이은상이 번역한 이래 많은 번역서가 간 행되었으며, 난중일기에 나타난 지명에 대한 현재의 행정지명 도 대부분 확인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량해전 이후 서 남해안을 항해하면서 이순신과 조선수군이 체류했던 장소 중 1597년 10월 11일 일기에 기록된 안편도(安便島) 또는 발음도 (發音島)의 현재의 지명이 어디인지 번역자 또는 학자들 간에 이견이 있고, 아직까지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고 있다. 신안군 팔금도와 장산도를 포함하여 완도군의 소안도 등은 역자들이 나 학자들이 추정하는 안편도로 추정되는 섬들이다(Jo, 1986;Park, 1998;Jang, 2002;Kim, 2004;Lee, 2004;Choi, 2007;No, 2014;Kim, 2015;No, 2014a;An, 2018).

    안편도가 팔금도라고 주장하는 견해는 발음도와 팔금도가 발음상 유사성이 있다는 점을 들고 있고, 장산도라는 주장은 장산도의 옛 명칭이 안파현이라는 점과 팔금도의 위치에서 바 라 본 월출산 및 나주 방향이 난중일기에 기록된 내용과 일치 하지 않다는 점을 들어 장산도가 안편도에 가깝다고 주장하고 있다(Jang, 2002;Kim, 2004). 그러나 두 견해 모두 추정하는 근거나 논리가 여전히 부족하다. 특히 이순신이 안편도라는 섬에 상륙하여 조선수군의 주둔지를 살피기 위해 주변을 관찰 했던 산에 대해서 팔금도로 추정하는 경우에도 채일봉(No, 2014b)과 금당산(Choi, 2007) 등으로 의견이 다를 뿐 아니라, 장산도로 추정하는 경우도 장산도의 어느 산인지 제시하지 못 하고 있다. 또 완도의 소안도는 설화에 기반을 둔 추정으로 당 시의 이순신 함대의 이동 경로나 전략적 상황에 비추어 추정 의 한계를 벗어나고 있다(Park, 1998;No, 2014). 이와 같이 다 양한 의견이 있는 가장 큰 이유는 현재의 지명을 입증할 만한 역사적 자료가 없다는 데 있기도 하지만, 난중일기에 기록된 내용에 대하여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현장 답사를 통하여 밝히 기보다는 과거의 번역자가 제시한 부정확한 추정 사실을 검증 없이 반복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추정되는 몇몇 섬에 대한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연구 또한 찾아 볼 수 없다.

    본 연구는 이은상이 난중일기를 번역한 이래 반세기 이상 몇 개의 섬으로 추정되고 있는 안편도의 현재의 장소가 어디 인지를 밝히기 위해 난중일기에 기록된 지형지물의 방향과 위 치가 실제와 어느 정도 일치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연구로서 아래와 같은 측면에 연구의 중점을 두었다.

    첫째, 이순신이 직접 작성한 1597년 10월 11일 일기에 기 록된 내용을 근거로 지금까지 안편도로 추정된 섬과 섬 안의 산들을 직접 답사하여, 이순신이 기록한 섬과 육지 및 산의 위 치와 방향이 실제로 어느 정도 일치하는 지를 항해 과학적 방 법으로 분석하고,

    둘째, 지금까지 거론되지 않았으나 사전 시뮬레이션을 통 해 지리적으로 가능성이 있는 새로운 섬과 산에 대해 현장을 탐사하고, 관측위치와 난중일기에 기록된 실제의 섬과 산 등 의 상대위치와 방향이 맞는지 검증을 하고,

    셋째, 지금까지 안편도로 추정되는 섬과 산은 물론 새롭게 탐사하여 발견한 제 3의 장소 등에 대한 종합 평가를 통해 난 중일기의 기록과 일치하는 섬과 산을 제시하는 데 중점을 두 었다.

    연구 대상으로 선정한 지역은 이은상이 난중일기를 번역한 이래 이제까지 안편도로 추정되는 섬으로 자주 거론 되었던 전남 신안군 팔금도와 장산도 섬에 있는 주요 산들을 선정하 여 분석 및 평가하였고, 제 3의 장소인 안좌도를 특별 탐사하 여 분석하였다.

    현장 답사는 2018년 4월부터 6월 하순 기간 중 맑은 날을 택하여 실시하였으며, 나침반, 지도, 망원경, 삼각자, 자체 제 작 방위측정 보조 장치 및 카메라 등을 이용하여 자료를 수집 했다. 탐사에 참가한 인력은 모두 항해사 면허를 소지한 항해 학자들로 한반도 서남해역은 물론 연근해 또는 대양에서 항해 경력이 있는 복수의 전문가들로 구성하여 실시하였다.

    2. 명량해전 이후 이순신 함대의 항적 및 안편도의 전략적 의의

    2.1 명량해전 이후 이순신 함대 항적

    조선수군은 명량해전에서 대승을 거둔 이후 왜적의 재 침 입에 대비하여 우수영에서 20마일 떨어진 당사도(무안군 암태 면)로 진을 옮겼다. 열세한 조선수군을 재건하고 미래를 도모 하기 위한 전략적 판단을 한 것이다. 이어서 서남해역의 항해 기록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Fig. 1>.

    9월 17일에는 여오을도(무안군 지도면 어의도)로 옮겨 체류 하였다. 9월 19일 일찍 법성포를 들렸다가 홍릉곶(영광군 홍 농면)으로 돌아와 바다위에서 잤다. 9월 20일에는 위도(영광 군 위도면)로 항해하였고, 9월 21 새벽에 고군산도로 항해한 후 10월 3일 새벽 법성포로 이동하기 전까지 고군산도에서 체 류하였다. 10월 3일 새벽 변산을 거쳐 법성포로 이동하여 10 월 7일까지 머물다가 10월 8일 법성포 인근 섬 부근으로 항해 하여 바다에서 잤다(법성포 입구 부근에는 백수읍 대신리 소 재 섬과 홍농읍 칠곡리 소재 섬 두 개가 있다. 9월 18일 법성 포에 들렸다 홍농면 섬에서 잤다는 기록으로 보아 10월 8일 해상에서 잤다는 법성포 인근의 섬은 9월 18일에 들른 홍농읍 소재의 섬과 동일한 것으로 추정된다). 10월 9일 일찍 법성포 인근 섬(홍농읍 칠곡리 소재 섬)을 출발하여 전라우수영까지 항해하였다. 10월 11일 우수영을 떠나 낮에 안편도에 도착하 였다. 이순신은 10월 29일 고하도로 상륙하기 전까지 이곳에 서 체류하면서 전시 상황점검은 물론 향후 조선수군의 재건에 대한 전략적 계획을 구상하였다.

    2.2 안편도의 전략적 의의

    명량해전 이후 서남해역 항적 중 특이할 만한 항해는 10월 9일 일찍 법성포 인근 섬에서 출항하여 전라우수영까지의 항 해로서 명량해전 이후 서남해안에서의 항행 중 가장 길고 험 난한 항해였다. 출발지와 도착지의 항정은 56마일(약 103Km) 판옥선의 평균 속력을 3노트라고 할 때 무려 18시간을 지속적 으로 항해하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항해는 실제 해전 상황에서도 그 유래를 찾기 어렵다. 명량해전 이래 서남해역 을 항해하면서 조선수군의 정착지를 구하지 못하고 떠도는 형 국에서 조속히 조선수군의 사령부인 우수영에서 조선수군을 재건하고 전비태세를 강화하기 위한 이순신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전라우수영에 입항한 이순신은 폐허된 우 수영에서 조선수군을 재건하고 전비태세를 강화하기 위한 본 래의 계획에 차질이 생겼음을 인지하고, 그날 밤을 바다 가운 데서 보낸 다음 임시전략 지휘소의 장소로 안편도를 선택하고 10월 11일 안편도(발음도)로 이동했다. 특히 안편도로 떠나기 전 해남의 왜군 동태를 확인하기 위하여 탐망군 수명을 해남 으로 보내 정보를 파악한 후 안편도로 이동하는 치밀함을 보 였다(Yi, 1597). 안편도는 고하도 상륙 전까지 18일을 체류하 면서 인근 육지의 관리들과 자주 전시 상황에 대하여 논의했 고, 중앙 정부와도 소통이 이루어졌던 사실상의 전시 전략지 휘소가 있던 곳으로 임진왜란 사에 큰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 나 전술한 바와 같이 아직 난중일기에 기록된 안편도라는 지 명이 어디인지 명확히 규명이 안 되었다.

    3. 안편도(발음도) 문헌 고찰 및 주변 지역의 역사적 특성

    3.1 안편도에 대한 난중일기 고찰

    1597년 10월 11일 낮 우수영 바다에서 북쪽으로 항해를 한 후 ‘안편도’라는 섬에 도착한 이순신은 섬 안에 있는 산으로 올라가 주위를 살펴본 결과를 일기에 기록하였다. 이순신의 일기 중 이순신이 직접 작성한 원문의 내용과 정조 19년 1795 년 9월 14일에 인쇄 반포된 ‘이 충무공전서’에 한 부분으로 수 록된 난중일기의 내용이 일부 다르게 나타난다. 이순신이 쓴 원문에는 ‘안편도(발음)’ 라고 기록되었으나 이 충무공전서에 는 ‘발음도’라고 기록되어 있다(Yi, 1597). 이순신의 일기 원문 의 1597년(정유년) 10월 11일 일기에 기록된 내용은 아래와 같다.

    “11일 정오에 안편도에 도착했다. 바람이 자고 날씨가 온화 하다. 배에서 내려 높은 산봉우리에 올라가 전선을 숨겨둘만 한 곳을 살펴보았다. 동쪽으로는 앞에 섬이 있어 멀리 바라볼 수 없었고, 북쪽으로는 나주와 영암의 월출산이 트이고, 서쪽 으로는 비금도로 통한다”. 또 그날 일기에는 “이윽고 중군장 과 우치적이 올라오고 조효남, 안위 우수가 잇달아 올라와 왔 고, 날이 저물어 산에서 내려왔다”라고 적고 있다.

    이순신이 안편도 산 위에서의 주변을 관찰한 목적은 전선 을 숨길만한 안전한 정박지를 찾는 것이었으며, 이를 위해서 이순신이 먼저 산 위에 올라 주변을 살펴 본 뒤, 그 뒤를 따라 산 위로 올라온 그의 참모들과 산 위에서 상당한 시간을 보내 고 해질 무렵에야 하산했다. 이와 같은 이순신의 안편도 상륙 후 산 위에서의 체류시간은 전시에 조선 수군과 전선을 안전 하게 보존하고 향후 전략 및 전술 등을 논의한 지휘관이 주관 한 현장 전략회의 시간이었음을 감안할 때 일기의 내용은 참 모들과 함께 논의한 결과를 기록한 작전일지의 성격을 갖는 다. 더욱이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순신과 조선수군의 높 은 항해 과학적 지식을 감안할 때 이들이 관측한 방향이나 지 형지물들도 사실에 가깝다고 보아야한다.

    3.2 안편도와 관련된 주변 지역의 역사적 특성

    3.2.1 목포

    목포지역은 행정지역으로는 삼한시대에는 마한에 삼국시대 에는 백제에 속했고, 통일신라시대에는 무안군으로, 고려시대 에는 무안군으로 불리었으며, 오랜 세월 동안 그 명칭이 여러 번 바뀌었으며, 조선시대에 이르러 나주목의 속현으로 이어졌 다. 과거의 목포지역은 현재의 목포시만 가리키지 않고 현재 의 무안군, 신안군을 함께 포함하였다. 1897년 10월 1일 목포 항이 개항되고, 1910년 10월 일제에 의해 목포부로 개칭되고 1932년에 무안군 일부지역을 더하여 8.6㎢의 도시면적에 인구 6만인 전국 6대 도시의 하나로 성장하였다. 군사적으로는 1397 (태조 6년) 목포진 설치, 1439년 (세종 21년)에 수군진(수 군처치영)이 해남 문내면으로 옮겨지고, 목포만호진이 설치되 었으며, 1502년 (연산 8년)에 목포진성이 축성되었으며, 1597 년 10월29일부터 1598년 2월 고하도로 수군통제영을 옮기기 전까지 조선의 수군통제영이 있었다(Mokpo City Hall, 2018).

    3.2.2 나주목, 나주군도, 영암 및 월출산

    나주목은 983년(성종 2) 전국에 설치된 12개의 목 중 하나 였다. 고려사에는 나주목이 “속군이 5개, 속현이 11개이며, 관 할하는 지사부가 1개, 군이 4개, 현령관이 4개이다.”라고 기록 되어 있고, 세종실록지리지에는 나주목이 “사방 경계는 동쪽 으로 남평까지 5리, 서쪽으로 무안까지 27리, 남쪽으로 영암까 지 32리, 북쪽으로 함평까지 32리 떨어져 있다.” 라고 기록되 어 있다. 조선시대의 나주목은 현재의 나주시내, 나주시 공산 면, 노안면, 다시면, 동강면, 문평면, 반남면, 세지면, 왕곡면, 영암군 금정면, 시종면 북부, 신안군 지도읍, 압해면, 자은면, 암태면, 안좌면, 비금면, 흑산면, 도초면, 장산면, 장성군 대화 면 대부분, 광주광역시 광산구 북부, 삼도면, 평동면, 무안군 삼향면을 포함하는 넓은 지역을 관할하고 있었다. 나주목의 행정구역 변화에도 불구하고 영암군은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 대까지 나주목에 속했다. 월출산은 오랜 세월 동안 나주목의 대표적인 영산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Naju City Hall, 2018, Yeongam County Office, 2018).

    나주군도는 신안군 안좌도, 팔금도, 상태도, 비금도, 도초도, 자은도, 암태도, 장산도, 하의도, 수치도 등과 연결되는 150여 개의 작은 섬들로 이루어졌으며, 조선시대에는 이 일대의 섬 들이 전라도 나주목에 속해 있었다(Encyclopedia of Korea Culture, 2018),

    위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난중일기에 기록 당시의 나주는 현재의 나주시 구역이라고 볼 수 없고, 현재의 영암, 함평, 무 안 및 목포를 포함하는 넓은 구역을 포함하였다. 따라서 당시 에 이순신이 조망한 당시의 나주는 안편도로 추정되는 섬에서 볼 때 현재의 나주방향보다 더 북쪽까지 확장된 상대방향으로 봐야한다. 월출산은 팔금도, 안좌도 및 장산도 등에서 육지 방 향으로 북동쪽과 남동쪽에 위치한 시인거리 내의 가장 높은 산으로서 형세 또한 험하여 날씨가 좋은 날에는 멀리서 보더 라도 산의 윤곽이 비교적 뚜렷하다.

    3.2.3 팔금도 및 장산도

    팔금도는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아차산현에 통일신라시대에 는 안파현에 고려시대에는 압해현에 속했다. 조선시대에는 나 주목, 영광군, 나주군에 순차적으로 속하다가 완도군에 속했 다. 장산도는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거지산현에 통일신라시대 에는 안파현에, 고려시대에는 장산현으로 속했다가 조선시대 1895년(고종 32)에는 지도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장산도와 팔금도 모두 무안군으로 편입되었다(Shinan County Office, 2018;The Digital Local Culture Encyclopedia of Korea, 2018;National Geographic Information Institute, 2010a).

    3.2.4 안좌도

    현재의 안좌도는 과거 기좌도와 안창도 2개의 섬으로 구성 되었는데 삼국시대에는 기좌도는 아차산현에 안창도는 안파 현에 속했고, 통일신라시대에는 기좌도는 압해군에 안창도는 안파현에 속했다. 고려시대에는 기좌도는 영암군에 안창도는 나주목에 속했으나 이후 모두 나주목에 속했다. 1914년에 팔 금도, 장산도 등과 함께 무안군에 편입되었고, 1917년에는 안 창도와 기좌도를 합하여 안좌면(안좌도)으로 개칭되었으며, 여기에 인근의 섬인 팔금도를 포함시켰다. 1969년 무안군에 속했던 장산면(장산도)과 안좌면(안좌도, 팔금도)은 무안군에 서 신안군으로 편입되었다. 1980년 팔금도가 안좌면에서 독립 하여 팔금면으로 승격되었다(Shinan County Office, 2018;The Digital Local Culture Encyclopedia of Korea, 2018).

    4. 안편도로 추정되는 섬의 현장검증 결과

    4.1 팔금도 및 장산도 현장검증 결과

    4.1.1 팔금도

    2018년 5월 4일 쾌청한 날을 택하여 팔금도 채일봉과 금당 산에서 현장 검증을 실시하였다. 채일봉은 높이 159.1m, 북위 34도 47.2분, 동경 126도 06.3분에 위치하고 있다. 채일봉에서 의 북동쪽으로는 압해도 송공산(228m), 현 나주시 방향, 무안 국사봉(258m) 등을 식별할 수 있다. 동쪽으로는 유달산(228m) 과 월출산(809m) 및 목포구 등대 조망이 가능했다. 남동쪽으 로는 해남 화원의 지령산(280m)과 운거산(325m), 시하도, 안 좌도 후동산(153m) 및 큰산(150.1m) 등을 볼 수 있었다. 서쪽 방향으로는 비금도의 선왕산(254.5m), 성치산(164m) 등을 볼 수 있었다.

    또한 높이 129m 금당산은 북위 34도 46.5분, 동경 126도 08.5분에 위치하고 있다. 금당산 북쪽으로 암태도와 당사도 등 을 조망할 수 있었으며, 북동쪽으로는 압해도 송공산, 무안, 나주방향으로의 조망이 가능했다. 동쪽으로는 유달산과 월출 산, 남동쪽으로는 시하도, 안좌도의 후동산 등을 볼 수 있었다 (Ko and Kim, 2018).

    팔금도의 채일봉과 금당산 정상에서의 주변 경관이 난중일 기의 기록과 일치하는지에 대해 정리한 결과를 Table 1, Fig. 2 ~ Fig. 3에 나타내었다. 팔금도 두 개의 산 정상의 현장 검 증 결과에서 난중일기에 기록된 내용과 현저히 다른 부분이 ‘동쪽에 시야를 가리는 섬이 없다는 점’이다. 월출산 방향도 북쪽이 아닌 거의 정동쪽(E)에 가깝다. 비금도는 난중일기의 기록과 같이 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나, 금당산에서 비금도를 바라볼 때는 채일봉이 시야를 가려 다소 답답한 면이 있었다.

    4.1.2 장산도

    장산도에는 대성산(196m), 아미산(137m), 오음산(209m) 등 의 산이 있다. 이러한 섬 주위의 많은 부분이 농경지로 사용되 고 있었는데 과거에는 갯벌 지역이었음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섬 북쪽에 약 1Km에 가까운 왁사지 방조제를 비 롯하여 섬의 동쪽, 남쪽, 서쪽에 크고 작은 방조제가 있다. 현 재 사용하고 있는 사창, 도창 등의 지명에서도 현재의 섬 깊숙 한 곳까지 선박이 드나들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들 3개의 산 은 모두 섬 서쪽에 자리 잡고 있으며, 북쪽부터 남쪽으로 오음 산, 아미산, 대성산 순으로 위치하고 있다. 2018년 5월 15일, 3 개의 산 중 가장 지형적으로 이순신이 올랐을 것으로 추정되 는 대성산(196m)에 갔다. 대성산 정상의 조망은 다음과 같다. 서쪽으로 비금도를 볼 수 있었고, 동쪽과 북동쪽으로는 탁 트 인 바다와 바다건너 화원반도, 유달산 및 월출산을 볼 수 있었 다. 여기서도 난중일기 기록과 현저히 다른 부분이 동쪽이다. 동쪽에 시야를 가리는 어떤 섬도 존재하지 않았다. Table 2에 장산도 대성산 현장답사 결과를 요약·정리하였다.

    4.1.3 팔금도와 장산도의 문제점

    기존의 안편도라고 추정되어 왔던 두 개의 섬인 팔금도와 장산도에 대해 현장 검증을 실시한 결과, 난중일기에 기록된 동쪽, 서쪽, 북쪽 경관에 대한 묘사 내용과 모두 일치한 곳은 없었다. 난중일기 기록과 현저히 다른 부분이 팔금도 및 장산 도 모두 ‘동쪽 방향에 시야를 가리는 섬’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순신과 그의 장수들이 해질 무렵 안편도의 산에서 내려왔기 때문에 해 지는 서쪽과 그 반대 방위 동쪽을 착각했을 가능성 은 낮고, 더욱이 여러 사람이 시야를 가리는 동쪽 섬의 존재를 잘 못 인식했을 리는 없다는 점으로 미루어 난중일기에 기록 된 안편도를 현재의 팔금도와 장산도로 볼 수 없다.

    4.2 제3의 장소 안좌도

    4.2.1 탐사 배경

    난중일기의 안편도가 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이 3가지 조 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조건 1) 동쪽에 섬이 있어 앞을 멀리 볼 수 없어야 하며, (조건 2) 서쪽으론 비금도가 시원하게 보 여야 한다. (조건 3) 북쪽에는 나주 및 월출산이 위치하고 있 어야 한다. 앞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지금까지 안편도로 추정 된 팔금도와 장산도는 난중일기의 기록과 일치한다고 볼 수 없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난중일기의 기록과 일치하는 제3의 장소(섬과 산)를 찾게 되었고, 지리적 특성과 역사적, 항해학 적, 군사 전략적 관점에서 임시 수군 전략기지로서의 안좌도 를 주목하였다.

    4.2.2 안좌도의 특성

    안좌도는 북쪽으로 팔금도와 남쪽으로 장산도 중간에 있는 섬으로 바다에서 보았을 때 전략적 입지로 적절하고, 해남 우 수영에서 12마일(약 22Km)로 육지의 왕래가 용이하다는 장점 이 있다. 또 지금은 하나의 섬인 안좌도는 과거에는 안창도와 기좌도라는 두 개의 섬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조선시대에 기 좌도는 영광군에, 안창도는 나주목에 속해 있었으나, 조선 후 기에는 두 섬 모두 나주목에 속하게 되었다. 1917년 일제 강점 기에 두 섬의 안창의 ‘안’자와 기좌의 ‘좌’자를 따서 안좌도로 개칭되었다(NGII, 2010c). 안좌도가 2개의 섬으로 나뉘어져 있 었다는 증거는 Fig. 4,와 Fig. 5와 같이 조선시대 ‘광여도’를 비 롯하여 ‘1918년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목포 1:200,000 지형 도’, ‘1972년 국립건설연구소 목포 1:250,000 지형도(NI 52-5)’ 에서도 알 수 있다. 현재와 같은 안좌도의 모습은 1970년대 이 후부터 진행된 간척사업으로 형성된 것이다.

    과거 안창도 지역의 지형을 보면 북쪽의 금산리부터 남쪽 의 여흘리 쪽으로 고도 100여 미터 이상의 산들이 산맥처럼 이어져 있고, 여흘리 쪽의 ‘큰산’과 대리의 ‘후동산’은 안좌도 내에서 150여 미터 이상의 높은 산 중 하나이다. Fig. 6과 같 이 산맥처럼 형성된 안창도의 산(금산, 큰산, 후동산)이 동쪽 너머 바다를 볼 수 없게 음영구역을 형성하고 있다.

    지구상에서 빛을 전달 매체로 지리적 광달거리 즉, 수평선 거리는 물표의 높이에 따라 계산된다(Park, 1986 ). 129.5m 높 이의 매봉산에서 관측자가 볼 수 있는 이론적 수평선 거리는 대략 44Km이다. 다만 매봉산에서 4.5Km 떨어진 곳에 약 117m 보다 높은 물체가 있다면 음영구역이 생길 수 밖에 없 다. 바로 그 위치에 높이 150.1m의 큰산과 153.0m의 후동산이 있다. 난중일기의 ‘동쪽에 섬이 있어 앞을 멀리 볼 수 없다’라 는 기록과 일치하는 부분이다. 한편 매봉산으로부터 동쪽에 위치한 월출산의 높이는 810m이다. 월출산은 매봉산으로부터 약 54.8Km 떨어진 곳에 있고, 두 산 사이에 월출산 보다 높은 산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쾌청한 날씨에는 충분히 월출산을 관측할 수 있다. 또 압해도 송공산과 목포 유달산 등 북동쪽에 뚜렷하게 식별되는 나주(나주목) 산하 지형지물을 볼 수 있었 을 것으로 짐작된다.

    4.2.3 안좌도 현장검증 결과

    난중일기에 기록된 내용을 토대로 이순신이 올랐던 산을 찾기 위해 2018년 5월 21일과 6월 13일 2회에 걸쳐 현장검증 을 수행했다. 그 결과 난중일기에 기록된 내용과 가장 일치하 는 산이 매봉산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매봉산에서 동쪽 으로 시야를 막는 섬이 이순신이 조망한 1597년 10월 당시에 는 ‘안창도’라는 섬이었고, 세월이 흐르면서 남쪽과 북쪽에 방 조제가 만들어지면서 지금은 두 개의 섬 사이(안창도~기좌 도)가 농지로 변했음을 확인하였다.

    Fig. 7은 매봉산에서 나주, 유달산, 월출산, 비금도 큰산의 거리와 방위를, Fig. 8은 매봉산 북동쪽의 조망을 나타낸 것이 다. 거리와 방위는 각 물표간의 위치(위도/경도)를 기준으로 <수식 1>을 이용해 계산했다. 각 물표별 진방위(True Bearing, TB)는 나주 059도(NE), 월출산 087도(NE), 비금도 277도(W) 큰산 089도(E) 방향으로 계산되었다. 이순신이 나침 의를 사용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나침의를 사용했다면 자 기나침의(magnetic compass)였을 것이고 자기나침의는 편차 와 자차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순신이 관측한 방위는 실제 이 진방위와 달랐을 것으로 판단된다. 일기 기록 과정에 개략 적으로 ‘나주는 북쪽, 비금도는 서쪽’으로 표현해도 무리가 없 음을 확인하였다.

    D = l sec C tan C = p / l
    (수식 1)

    여기서, D : 거리(해리), l : 변위, p : 동서거, C : 방위각

    부록(Appendix)의 ‘Fig. A-1 ~ Fig. A-6’은 현장답사를 통 해 확보한 사진들이다. 부록의 Fig. A-3은 매봉산의 북동쪽으 로 나주 및 유달산과 월출산이 보이고, Fig. 8은 매봉산의 동 쪽으로 큰산과 후동산이 앞을 막고 있어 바다를 전혀 조망할 수 없음을 보이고 있다. Fig. 10은 매봉산에서 서쪽을 바라본 것으로 비금도와 도초도가 시원하게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 다. 과거 매봉산의 바로 서쪽은 바다였으나, 현재는 방조제가 설치되어 양식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Figs. A-2-A-4, A-5

    Table 3에 안좌도 매봉산 정상에서 관측한 지형지물의 결 과와 이순신의 일기에 기록된 내용의 일치여부를 수록하였다.

    5. 종합검토 및 결론

    노산 이은상이 난중일기를 번역한 이래 상당한 수의 난중 일기 번역서가 간행되고, 임진왜란 및 이순신에 대한 연구나 다양한 행사가 수 없이 많이 진행되었으나 1597년 10월 11일 이순신이 기록한 일기의 내용 중 조선수군의 전시 임시 전략 지휘소로서의 ‘안편도’라는 섬에 대해서는 무려 반세기 동안 확인되지 않고 있다. 또한 신안군의 팔금도와 장산도, 완도군 의 소안도와 같이 서남해역의 몇 개의 섬이 안편도로 추정되 고 있으나, 이에 대한 특별한 검증이나 추가적인 연구가 진행 되지 않고 있다. 본 연구는 안편도로 추정되는 섬을 현장 방문 하여 난중일기의 기록과 일치하는지 검증하였다.

    현장 답사를 통해 얻은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팔금도와 장산도는 난중일기의 북쪽과 서쪽 경관이 일부 일치하는 부분이 있으나, ‘동쪽 시야를 가리는 섬’이 존 재하지 않았다. 또한 팔금도에서 이순신이 비금도를 서쪽으로 관측하였다면, 월출산은 그 반대 방위인 동쪽에 위치하고 있 어 북쪽이라 표현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음을 확인하였다.

    둘째, 현재의 안좌도는 과거 안창도와 기좌도로 분리된 섬 이었고, 안좌도에서 난중일기에 기록한 내용과 가장 일치한 지점이 매봉산임을 확인하였다. 난중일기 상에 동쪽 시야를 가리는 섬이 과거 안창도(현재 안좌도 여흘리)였음을 알 수 있었다. 난중일기의 북쪽, 동쪽, 서쪽 경관에 대한 묘사 부분 과 가장 일치하였다.

    셋째, 팔금도와 장산도가 오랜 기간 안편도로 추정되었던 이유에는 팔금도, 장산도 및 안좌도 세 개의 섬이 역사적으로 동일 행정 구역에 속했던 것과 무관하지 않음을 유추할 수 있 었다.

    이 연구는 지리적, 항해학적 측면에 중점을 둔 연구 결과이 다. 향후 해양 전략적 측면에서의 안편도(안좌도) 기지에 대한 연구를 포함하여 좀 더 다각적인 연구가 지속적으로 진행되기 를 기대한다.

    Figure

    KINPR-42-469_F1.gif

    Movement route of Yi sun-shin’s fleet, after the battle at Myeongnyang

    KINPR-42-469_F2.gif

    East view from Chaeilbong of Palgeum-do

    KINPR-42-469_F3.gif

    Bearing and dist. from Chaeilbong of Palgeum-do

    KINPR-42-469_F4.gif

    Comparison of Gwangyeodo and modern map(1918’s)

    KINPR-42-469_F5.gif

    The geographical changes of Anjwa-do

    KINPR-42-469_F6.gif

    The geographical features of Anchang-do(NW view from Maebong mount. of Anjwa-do)

    KINPR-42-469_F7.gif

    The bearing and dist. from Meabong mount. to Wolchul mount. and Naju, Bigeum-do

    KINPR-42-469_F8.gif

    East view from Maebong mountain

    KINPR-42-469_FA1.gif

    Location of Maebong moutain(Anjwa-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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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orth(N) view from Maebong mountain

    KINPR-42-469_FA3.gif

    North-east(NE) view from Maebong mount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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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ast(E) view from Maebong mountain

    KINPR-42-469_FA5.gif

    South(S) view from Maebong mountain

    KINPR-42-469_FA6.gif

    West(W) view from Maebong mountain

    Table

    Field survey result of Palgeum-do(Chaeilbong) and Geumdang mountain

    Field survey result of Jangsan-do(Deasung mount.)

    Field survey result of Anjwa-do(Maebong mou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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